사랑합니다!(테리우스원)

희귀 보호 대상 야생화에 숨은 이야기를 탐구하는 사진 작가 (정필원)

야생화모음(ㅁ)

망종화(금사매)물레에서 목화와 문익점의 사랑

테리우스원 2009. 7. 27. 13:55

 

 

우리 딸소유 빨간 색상 승용차에 몸을 싣고 달리는 거리에서 보여지는 노란 꽃이 아주 선명하게  바람에 하늘거린다.

야생화를 좋아하다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색다른 꽃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면 그들도 서운해 할 것 같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 가방을 메고 조심스럽게 접근해보니

물레나물과의 망종화의 야생화가 나를 반겨주는 듯 하다.

 

도심지에서 복합주상 아파트를 건립하면서 큰 도로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하여

나무로 심은 방벽이라고 하는 숲길을 조성한 곳이 많이 있는데

그 곳은 휴식의 장소로 나이 많이 드신 분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그날도 오후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장마 기운이 많이 감돈 시간

여느때와 같이 나이 많이 드신 할머니 5분이 둥글게 둘러앉아서

둑방을 내리치는 준공검사를 하는 고도리 놀이로 함박웃음이 섞인  즐거운 모습들이다.

 

망종화 야생화가 그 바로 밑 햇빛이 쏟아지는 장소에 꽃망울을 피우고 있기에

아무 생각없이 그 망종화에만 관심을 가지고 망원렌즈 카메라를 들고 접근하는 순간 

할머니들의 동작이 아주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놀던 놀이판을 덮고 난리가 났다.

행여 사진기자로 오해하여 기사화되면 자녀들에게 창피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더욱 미안하여

'할머니 아니예요 그 냥 놀고 계세요! 둑 밑에 있는 꽃을 사진기에 담으려고 왔답니다' 하면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곳에 자리를 틀고 있으니 비록 아름답다고는 하나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였나 보다

얼굴이 환하지 못하고 꽃잎들이 비바람에 시달키어 상처가 난 자국도 여러곳이다.

 

가지의 형태는 자기들이 생긴 모습으로 들쭉날쭉 엉망하다.

그래도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 담아가면 자신을 사랑한다고 여기겠지 고백하면서

장마에 사라진 햇빛과 오후의 늦은 시간이라 선명도는 많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쁜 모습으로 담아달라고 긴 수술을 쭉 내밀고 포즈를 취하는

아름다운 향기들이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도 노란 색상에 빨려간다.

 

 

 

 

 

 

망종화(금사매)

Hypericum patulum Thunb.

  

 물레나물과의 낙엽활엽관목이고 망종화(芒種花), 다른이름으로는 금사매라고라 한다.

무리지어 자생하므로 덩굴같이 보이기도 하며 키는 1m정도로 자라고 갈색의 가지와 잎은 서로 마주나기로 달린다.

잎의 모양은 긴 타원형이고 끝이 둥글고 두꺼우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없고 매끄러우며 3-5cm정도

폭은 이 보다 조금 작으며 초여름에서 늦가을까지 자신을 뽐내면서 노란 향기를 뿜어낸다.

 

꽃받침과 꽃잎이  5장이고 수술은 5뭉치 암술대도 5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꽃송이는 1-4송이가 가지 끝에 붙어 4-6cm정도의 크기로 피어난다.

관목이지만 화초처럼 보이는 연약함도 함께 존재한다.

 

 

 

  

물레나물과라고 하여 물레에 대하여

물레는 우리에게 인내심을 키우주는 도구이다.

그래서 조금씩 매일 쉬지 않고 돌리는 마음의 수련으로 끈기있는 갸느린 실로

우리가 입을 천을 짜맞추듯이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쉼없는 수련의 묵상이 필요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며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지면 실들이 헝클어져 그 기능을 회복하기 힘들것이다

천천히 서둘지 않고서도 뒤돌아 보면 아주 아주 멀리 곱게 담겨진 실타래를 바라볼 것이다.

 

 

 

 

물레타령(중모리)  노래소리를 음미하여 보면


(후렴)
물레야 물레야 빙빙빙 돌아라 워리렁 서리렁 잘도 돈다


마포 갈포 실뽑기는 삼한 시대의 유업이요
무명실로 베짜기는 문익점 선생의 공덕이로다

물레야 물레야 웽웽웽 돌아라 워리렁 웽웽 잘도 돈다
물레야 물레야 웽웽웽 돌아라 워리렁서리렁 잘도 돈다

호롱불을 돋우시고 이 밤이 새도록 물레를 돌려 베를 낳네
물레야 물레야 웽웽웽 돌아라 워리렁서리렁 잘도 돈다

삼합사로 실을 뽑아 석새베를 짜게 할까
외올실을 뽑아내어 보름새를 짤까
물레야 물레야 웽웽웽 돌아라 워리렁서리렁 잘도 돈다


잦은물레타령(중중모리)

물레야 빙빙 돌아라 웽웽웽 돌아라

서당 도령 어디 갔소 보선 신고 서재 갔소
물레야 빙빙 돌아라 스리렁 웽웽 돌아라

이 물레를 어서 잣아 베를 나서 알뜰한 우리 님 도포를 하세
물레야 빙빙 돌아라 스리렁 웽웽웽 스리렁 설설 돌아라

 

물레라고 하니까 물레방아까지 등장시킨다.

 

 

  

물레라는 단어는 우리의 조상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기구로 현재에도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도 물레가 오래전부터 쓰였는데 나무로 된 여러 개의 살을 끈으로

얽어매어 보통 6각 또는 8각의 둘레를 만들고 가운데에 굴대를 박아 손잡이로 돌리게 된 기구를 말한다.

물레에서 뽑아낸 실로는 베틀에서 천을 만들고 있으며 물레가최초로 만들어진 곳이 인도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있지 않으며 중세에 근동(近東)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다.

 

물레 이전에 손으로 섬유를 잣던 원시적인 방법은 막대기에 달아놓은 털뭉치에서 실을 뽑아낸 뒤

마주 꼬아서 긴 가닥을 만들고, 이것을 다른 막대기에 감는 것이었다.

물레를 사용하는 첫번째 단계는 물레축을 받침대에 수평으로 끼워서,

손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큰 물레바퀴에 실이 감기면서 회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섬유 뭉치가 감겨 있는 가락을 왼손에 쥐고 물레바퀴를 오른손으로 돌리면 된다.

이때 가락에 감겨 있는 섬유의 일정한 각도에 따라 필요한 정도의 꼬임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볼 수 있다.

 

물레를 말하며 떠오르는 것이 목화꽃과 그리고 문익점이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106-1번지 사적 제108호(1963.01.21 지정)된 곳에서는

고려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문익점은 공민와 12년(1363년) 중국의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면화 씨앗을 구해 왔다.

그뒤 문익점은 장인 정천익과 함께 면화재배에 성공하였으며

면화로 얻어지는 포근한 솜과 질긴 무명은 옷감을 향상시켜 백성들의

의복생활에 혁명적 공헌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전한다.

 

 

 

 

 

문익점 (고려 문신)  [文益漸]

 

1329(충숙왕 16)~1398(태조 7)고려말의 문신이며 자는 일신(日新), 호는 삼우당(三憂堂)

사신으로 중국 원나리에 들어가 덕흥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과정에 가담했다가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본국으로 귀환할 때 붓뚜껑에 목화씨를 넣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목화의 시조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부친은 숙선(淑宣)이고. 1360년(공민왕 9) 문과에 급제하여

김해부사록(金海府司錄)·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1363년에 좌정언(左正言)으로

계품사(啓稟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갔다.

이때 원나라에서 공민왕을 폐하고 충선왕(忠宣王)의 아들인 덕흥군(德興君)을 왕으로

세워 고려로 진군하게 하자 이를 지지했는데, 덕흥군이 패했다.

문익점은 그뒤 귀국했다가 그 혐의로 파직되었다.

귀국할 때 금수품이던 목화의씨를 엄밀하게 가지고 들어와 진주(지금의 산청)에서

장인인 퇴헌(退軒 )정천익(鄭天翼)과 함께 3년 만에 목화재배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목화에서 씨를 제거하고 실을 제거하는 방법을 몰랐으나,

정천익이 호승(胡僧)·홍원(弘願)에게 씨를 빼는 씨아[取子車]와 실을 뽑는

물레[繅絲車]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 이를 보급시켰다.

 

 

 

 

목화가 널리 전해짐으로써 일반 백성들의 의복 재료가 종래의 삼베[痲布]에서 무명[綿布]으로 바뀌게 되었다.

목면을 보급한 공으로 1375년(우왕 1) 전의주부(典儀注簿)에 임명되었으며, 1389년(창왕 1) 좌간의대부를 지냈다.

그러나 전제(田制)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이성계파와 이색·우현보 등의 의견이 갈라졌는데,

이색 등과 함께 사전(私田) 혁파를 반대하다가 조준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났다.

 

조선 태종 때 그의 공을 기려 참지의정부사·예문관제학·동지춘추관사·강성군(江城君)을 추증하고,

두 아들을 사헌부감찰로 발탁되고 1440년(세종 22)에는

영의정과 부민후(富民侯)를 추증했고 충선공(忠宣公)이라 시호를 내렸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의 문익점면화시배지가 사적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곳에 삼우당선생면화시배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목화의 전래와 재배, 가공 등에 대한 내용이 〈목면화기 木棉花記〉에 실려 있다.

 

  

 

 

항상 즐거운 시간으로 승리하시길

 

사랑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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