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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보호 대상 야생화에 숨은 이야기를 탐구하는 사진 작가 (정필원)

기타(인물사진 포함)

떡메로 쳐서 만드는 산막이 옛길 인절미 체험장!!

테리우스원 2012. 11. 14. 08:56

 

 

 

 

사계절 아름답고 사랑, 낭만, 추억을 간직한 산막이 옛길을 찾아 나선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괴산호를 끼고 산막이 마을까지 조성된

 옛길을 걷다보면 인절미 떡메 만들기 체험장이 발길을 사로잡는다.

 

옛날의 풍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물레방아가 자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벗 삼아 돌아가는 모습으로

애잔한 마음에 불을 지핀다.

 

 

 

 

두 자매가 함박웃음을 머금고 지나치는 관광객들에게

풍성한 마음을 전달하는 힘으로 땀 흘리며 걸어온 옛길에

쌓인 피로를 말끔하게 날려 보내 버린다.

 

오늘은 떡메치기로 만든 인절미를 맛보려고 한다.

여 주인장은 자신이 농사 짓은 찹쌀을 쪄진 재료를

큰 소나무로 자른 평평하고 마음같이 넓은 곳에 쏟아 붓고

체험을 하고 싶은 구경꾼들에게 떡메를 쳐보라고 배려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옛날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모두는 메를 머리위로 힘껏 들어 올린 후 떡판 찹쌀에게 내리쳐 된다.

 

떡판위로 메가 한 번 씩 철썩하고 내리칠 때면

박수와 웃음소리가 산 계곡을 가득 메운다.

우리 옛날의 정서는 이렇게 아름답고 흥겨운 문화들이다.

 

 

 

 

떡메는 떡을 칠 때 사용되는 도구이다.

옛날 인절미, 송편, 절편, 경단, 가래떡 등을 찰지고

부드러운 맛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두툼한 통나무 판과

편평한 돌 위에 쪄낸 찹쌀과 멥쌀을 붓고 기구로 내리쳤던 것이다.

 

떡메는 떡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라고 떡이라고 하였고,

힘을 가하여 내리쳐서 만들어 지는 다양한

떡 종류가 되는 떡메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떡은 농부들이 가꾸고 노력한 결실의 곡식들을

디딜방아 등에 부드럽게 가루를 내어 흙으로 빗은 시루에 넣고

쪄내거나 삶아 기름과 함께 버물려 만든 것을 이야기한다.

 

우선 떡이란 단어의 어원을 알아보면 찌다 행동들이 찌기

그리고 서로 나누어 먹는 다는 떼기에서

서로 엉겨 붙는 음식이란 표현으로 떡 하는 소리로 변했다고 한다.

떡이란 이름은 규합총서에서 문헌의 첫 소리를 듣도록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인 나진 초도패총에서

손잡이가 양쪽으로 붙어 만들어 졌고 밑에는 수증기로 찔 수 있는

원의 구멍이 여러 개 형성된 시루가 출토되어

떡의 역사로 추정되기도 한다.

 

떡은 중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현재 중국에서는 쌀보다 밀가루 사용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밀가루로 떡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떡 하면 쌀 종류로 만들어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유리왕 원년(298년)에 유리와 탈해 왕자는 서로에게

왕위를 양보하자 탈해 왕자가 유리에게 왕위는 용렬한

인격이 감당 할 바 못되고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齒)가 많다고 하였다.

 

 

 

 

그 제안을 받아 들여 두 왕자는 떡을 깨물어

치아가 많은 유리가 왕위를 계승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물론 그 당시 어떤 종류의 떡을 가지고 깨물어

판정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흰떡이나 인절미가

 아니었을까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의 내용에는 명절 전날 이웃집에서

디딜방아로 떡 재료를 만들고 떡메를 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가난하여 그 행위를 하지 못하는 백결선생이 부인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거문고로 떡메로 떡을 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최근에는 밀가루로 만든 떡의 대용물인 빵에 밀려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정서에는 쌀 종류로 만든 떡은

자리를 이탈하지 못하고 있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떡이 다량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지만 옛날 방식 그대로 떡메를 쳐서 만든 떡의

맛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떡의 구수함을 강하게 표현하려고 콩을 가루 내어

떡메 친 떡을 버물려 먹는 지혜로움도 대단하다고 사료된다.

증보산림경제, 임원십육지, 성호사설에서는 콩고물을 묻힌 인절미가

기록되어 있으며 주례(周禮)에는 인절미를 떡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기록되어 전한다.

 

 

 

 

선산임씨 임절미(인절미)의 유래는 이러하다.

 

인절미의 이름에 과한 속설로는 조선조 인조(仁祖)때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이 반란군에 점령을 당하자 무섭다고 울면서 인조 임금은

백제시대부터 축정된 공주의 공산성으로 피란을 갔다.

그 곳에 도착하여 배고프다고 상궁에게 보채기도 하였다.

 

어느 날 피란 중인 그 곳에서 이씨왕조 명종 때

우의정 선산임씨 임백령 후손 임씨(林氏) 농부가 백령미

찹쌀로 찰떡을 해가지고 인조 임금에게 드렸다.

 

그 떡 맛이 좋고 처음 먹어보는 떡이라 신하들에게

그 이름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인조가 떡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선산인(善山人)

임서방이 정성스레 만든 떡이라고 하여 임절미라

한 것이 오늘날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최근에 산막이 옛길이 등산길로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호응을 보이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이다.

그 등산길을 다음에 안내하여 드리고 오늘은 떡메

 체험장의 이야기부터 알려드린다.

 

아마도 산막이 옛길을 찾는 다면 이

곳의 떡메로 만들어진 인절미를 맛보지 않으면

많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체험하고 먹을 수 있는 인절미는 한 팩에 3,000원,

그리고 목이 메지 말라고 국내산 재료로 직접 만든

혜도 인기를 더 한다.

 

어린 자녀를 동반하고 떡메를 치는 체험도 하고

직접 그 맛을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정말 감칠맛은

어떤 기계의 떡은 따라 오지 못한 아주 묘한 맛에 반할 것이다.

 

 

모든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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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메 

찐 쌀을 붓는 장면 

떡메를 치기 위한 준비 

떡메 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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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메로 만들어진 재료 

적당하게 잘라서 

떡메친 떡을 운반

인절미 만들준비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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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물을 묻히고 

먹기 좋게 잘라서 

서로 달라 붙지 않도록

그릇에 담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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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의 정서 

뽕잎 가루로 만들 인절미

물레방아 


눈이 창밖으로 내리는 초겨울 건강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세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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