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테리우스원)

희귀 보호 대상 야생화에 숨은 이야기를 탐구하는 사진 작가 (정필원)

아름다운 명소

국보 지정된 극락전 하앙 건축이 자존심을 지켰다!

테리우스원 2012. 2. 23. 07:00

 

 

 

우리나라의 국보1호는 숭례문이다.

국보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해주는 귀중한 사적 자료이며,

영원히 보존되어야 할 민족적. 국가적 최고의 재산이므로

다른 자원과는 달리 특수재산으로 취급되어 되어 문화재보호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국보의 지정 기준에 대한 세부사항으로는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특히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것,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제작연대가 오래되고 특히 그 시대에 대표적인 것,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제작의장이나 제작기술이 특히 우수하여 그 유례가 적은 것,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형태·품질·제재·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것,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특히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 등의 시행규칙이 마련되어 있다고,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중에는 석탑·부도(浮屠)·석등·석조불상·석비(石碑) 등의

석조물이나 금동불·동종(銅鐘)·금제장신구·동기류 등의

금속제품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회화나 목조건축은 그 수가 적은 편이다.

 

 

 

 

 

 

전북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화암사(花巖寺) 극락전(極樂殿)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불명산은 봄을 알리는 야생화가 많은 지역이라

나를 더욱 현혹시키는 곳이다.

봄의 전령사이고 많은 복을 안겨주고 장수를 기원하며

 부까지 안겨준다는 복수초 야생화가 이곳에서 첫 선을 보이기도 한다.

 

화암사를 오르는 길목 주변에 많은 복수초가 장관을 이루는데

최근에는 인간의 욕심으로 무분별하게 훼손되어

 찾기 힘들 안타까운 사항이 되어 버렸다.

 

 

 

 

 

야생화의 탐사 길로 따라 들어선 화암사 길 중간에는

국보로 지정 되었다는 경축 현수막이 걸려있다.

국보란 재산은 평범함이 아니므로 아주 짧은 본인 지식으로

거창한 사찰 모습만 연상하게 되었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비포장의 초라한 작은 길 끝자락에

국보가 숨어 있다니 걸음을 내딛는 발걸음 머리가

혼란 서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아직 야생화가 많이 미동하지 않고 적막함도

감도는 산길 호기심을 안고 걸어갔다.

 

철로 만들어져 147계단의 주변에는 시와 그림

흙으로 빚어 만든 공공미술과 만나다는 팻말 뒤로 다양한

작품들이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즐비하게

전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면서 정성이 담긴 시와 다양한 작품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다 보니 지루함도 없이 계단

끝자락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국보를 간직한 사찰이 암반위에 아주 검소한 모습이지만

내 마음을 서서히 사로잡기 시작하였다.

 

 

 

 

 

 

주변을 두루 살펴보니 항암치료의 효능을 가진 조릿대가

풍성하게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고 돌산 가운데 자리를 틀고 있는

낡았지만 품격이 있는 우화루의 뒤태가 제일 먼저 반긴다.

 

사찰일까? 아니면 옛날 산속에 자리 잡은 낡은 약초꾼의 집일까?

혼란스러울 정도의 겸손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국보로 지정되었으면 아주 호화스럽고 찾는 이가

흥분된 마음을 가질 충분함은 한 곳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붉은 글씨로 아주 크게 들어서는 입구에

조용히 다녀가시기 바랍니다.”

사치스럽고 번잡함을 싫어하는 문구로 다가온다.

 

궁금함이 있지만 의심스런 내용을

어느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설명으로 설치된 시설물에 의지할 뿐 심지어는

사진 촬영도 금하는 명령적 문구와 대부분 문들이 잠겨 있지만

극락전 안의 범종을 사진 촬영하지 말라는 경고로 이해하였다.

 

 극락전의 한쪽 문만 출입 흔적이 보여

문고리를 잡고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본다.

 안은 다른 사찰의 대웅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함이다.

 

 

 

 

화암사 극락전 건물은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하앙식(下昻式) 건축물로 조선 선조 38년(1605년)에 지은 것이다.

 

하앙은 기둥과 지붕 사이에 끼운 긴 목재인데,

처마와 나란히 경사지게 놓여 있다.

 

이것은 처마와 지붕의 무게를 고르게 받친다.

극락전 앞쪽 하앙에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나

건물 뒤쪽 하앙은 꾸밈없이 뾰족하게 다듬었다.

건물 안에는 아미타삼존불상이 있다.

 

 

 

 

 

 

하앙식 구조는 한국에서는 이 건물뿐이므로 목조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 보물 제663호가 국보 316호로 승격되었다는 것이다.

 

하앙식 건축물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건물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유물 등을

통해서만 그 존재 가능성을 추정해왔다.

 

신라보다는 백제에서 성행했던 양식으로 추정된다.

부여박물관에 소장된 백제 청동제소탑편과 간송미술관의

금동불감에서 하앙 구조를 볼 수 있으며,

백제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로 알려진

일본 법륭사의 금당과 5중탑(五重塔)에서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빌미로 일본학자들은 하앙식 건축구조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일본문화로

흘러왔다고 주장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6년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식 건축 방식이 학계에 보고되었다.

일본 측으로서는 큰 충격이었고,

 우리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발견이었다.

화암사 극락전은 빠른 속도로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 건축 전문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고 현재까지

더 이상 비슷한 사례가 보고된 바는 없다.

 

겸손하며 속세의 묵은 때가 보이지 않는 조용한 산세에

낡은 사찰로 묻혀 있던 화암사 극락전이 우리나라 목조건축기술의

자존심을 아주 크게 세워주게 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2011년 11. 28일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하앙식 목조건축으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적으로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고 밝혔다.

 

실망의 끈을 줄이기 위하여 보충적 설명을 다시 드리면

화암사는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여느 사찰과는 구별되게

규모가 작고 단조로워 마치 조용한 산 속에

오래 묵은 초가집 같은 모습이다.

 

 

 

 

화암사는 두 개의 목조 건축물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화암사 입구에서 뒤모습으로 맞이하는 보물 622호의 우화루이다.

 

우화루는 화암사 경내에 있는 극락전 정문과 같은 성격의 누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광해군 3년(1611년)에

세운 것으로 뜰 사이를 두고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다.

 

 

 

 

수백 년의 세월을 한 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우화루는

자세히 살펴보면 1층 축대가 약간 기울어져 있고

건물은 연한 회백 빛으로 많이 바래져 있어 안쓰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 기울어진 자세가 오히려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지지해주는 버팀목이 된 것일까?

화루 왼쪽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국보 극락전의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암사는

불명산의 청량한 숲길을 따라 산 중턱에 위치한 

 자연이 준 예술적 극치가 돋보이는 바위와 나무

그리고 단청을 거부한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국내 유일의 하앙식 구조인 극락전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천년사찰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절벽과 절벽사이의

계곡에 놓여진 계단이 열 한번 굽어지면서 암반 위로 흐르는

맑은 물을 발아래 두고 1백47계단을 오르면

화암사의 정문 격인 우화루(보물662호)를 대하게 된다.

 

화암사는 우화루와 극락전(보물663호)이 남북으로

불명당과 적묵당이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입구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락전 왼쪽에는 입을 놀리는 것을 삼가라는 철영제가 있고

적묵당 뒤편에는 산신각, 우화루 옆에 명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밖에도 지방문화재인 동종(지방유형문화재 40호)과

중창비(지방유형문화재 94호)가 있으며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기록이 뚜렷한 곳으로

자연적인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건축양식은

선인들의 슬기를 새삼 느끼게 하고 다시 찾아

마음을 다스리는 휴양 장소로 알맞은 곳이다.

 

 

 

 

 

 

화암사(花巖寺)에 얽힌 설화

 

옛날 임금님의 딸 연화공주가 원인모를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세상 다 좋다는 약도

공주의 병에는 모두 허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불심이 깊은 임금님의 꿈에 부처가 나타나

“이미 너의 갸륵한 불심에 감동했노라”고 말하며

왕의 앞에 조그마한 꽃잎 하나를 던져주고는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임금님은 그 길로 부처께서 일러준 꽃을 찾기 위해

사방에 수소문했고 마침내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 꽃은 불명산 깊은 산봉우리 바위에 핀 복수초였다.

연못이 아닌 바위에 핀 꽃이라 임금님은

은혜의 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신하들에게

조심스럽게 꽃을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신하들이

“누가 이 연꽃을 키우고 있는 가를 알아보자”며 지켜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산 밑에 있는 연못 속에서 용 한 마리가 나타나

꽃에 물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목격한 다른 신하는 모두 도망가고

용감한 신하 한명만이 꽃을 꺾어 궁에 돌라왔다.

꽃을 먹게 된 공주는 병이 깨끗하게 나았고

임금님은 부처님의 은덕이라 생각하고

 그 곳에 절을 짓고 부처를 모시게 했다.

그 후로 임금님과 많은 신하들이 이곳에 와 불공을

드리는 한편 이 절 이름을 화암사 지었다고 한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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