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테리우스원)

희귀 보호 대상 야생화에 숨은 이야기를 탐구하는 사진 작가 (정필원)

야생화모음(ㄷ)

보은(報恩)의 종소리를 들려줄 더덕꽃

테리우스원 2009. 8. 19. 15:43

 

 

 

1976년 어느봄  강원도 화천군 최전방 백암산 자락으로 배치된 군 복무 시절

 일과는 야간 경계근무 및 낮에는 지침과 오후엔 화목(火木),제초작업 그외 간단한 사격훈련등 이다.

막사의 뒷편에 경사 60도를 무시한 가파른 백암산 자락 산길로 화목작업을 일과로 나서던 날.

 

최전방에는 여름에도 막사내에 불을 지피고 야간 취침을 하여야 한다.

더운 여름에 무슨 불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중동부 전선의 깊은 산 자락의 최전방에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매우 심하여 밤에도 불을 피우면서 생활하여야 한다.

 

화목의 재료로는 주로 참나무, 박달나무로 마르지 않아도 화력이 좋아 사용되었다.

막사의 중앙에 화목을 사용할 수 있는 난로를 이용하였는데

 지름이 약 10-20cm정도의 통나무를 길이 50-70cm로 절단한 

생 나무를 그냥 넣어도 화력은 그만이다.

 

그 당시에는 전기불이 들어 오지 않는 시절이라 석유 호롱불을 사용하였던 기억을 떠올린다.

화목작업을 위하여 톱과 낫을 들고 가파른 산숲을 헤집고 다니다가 옷깃에

스쳐 흘러나오는 독특한 더덕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해발이 높고 밤과 낮의 기온 차이가 심하다 보니 더덕의 향기는 더 한것 같다.

그리고 민간인의 출입통제 구역(민통제구역)이므로 간첩외 심마니와 약초 채취꾼의 흔적은 찾지 못하므로

자연적 보존상태는 년도를  가름하기 힘든 진품들도 많이 발견되곤 한다.

 

 

 

 

더덕의 야생화는 씨로 종족을 퍼뜨리므로 자연속에 얼마나 많이 번식이 되었는지

어미 더덕을 하나 발견하면 주변은 온통 애기들의 더덕 밭일 정도 이다.

 

산을 전체로 볼때 7-8부 능선에서 더덕이 주로 자생하며 많은 개체를 발견 할 수있다.

오래 묵은 것은 더덕의 줄기가 손가라락 굵기가 되어지며 야전 곡괭이로 팔 정도로 대단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지나쳤는지 두손을 모은 굵기의 더덕은

속의 세포가 삭아 더덕의 물로 채워진 것도 발견된다.

 

재배하는 더덕과는 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치는 잎으로 인하여 풍기는 더덕향기를 맡아보면 왜 더덕이 우리 몸에 좋은 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화목(火木-불을 땔 목재)의 참나무나 박달나무를 개인당 한 그루 길이가 4-5m정도로 톱으로 잘라 어깨에 메든지

무거우면 칡끈으로 여러 겹을 엮어 묶어서 산 아래까지 그리고 부대 막사 화목장으로 끌고 내려오는 작업이다.

 

덤으로 더덕을 많이 캐올 경우 식당에 의뢰하여 소금으로 무쳐진 된장으로

계곡물에 껍질을 씻어 벗겨내면 그 진액이 온 손에 묻어 검은 콜탈이 묻어 양 쉽게 없어 지지 않았고

 식사때 마다  동료들과 더덕 향기를 먹어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되살아난다.

그때의 향기는 지금의 더덕의 향기와 비교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야생화를 만나려고 산속을 헤메이다 마주치는 더덕을 볼 때면 옛날을 많이 그리워하는 아름다움이다.

더욱 아름답게 그 향기를 표현하려고 무딘 애를 쓰보지만 많이 담아보고 실패한 사진중에 하나가

 더덕꽃인데 생각보다 쉽게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 식물이다.

 

오늘은 마음먹고 풀모기에게 나의 혈액을 제공하면서 까지 고정된 자세로 아름답게 담아보련다.

과연 얼마나 정교 하게 표현 될 지 모르나 나의 힘을 다한 더덕 꽃으로 감상하시길 바람.

 

더덕은 남을 의지하여 덩굴손으로 감는 식물인지라 더덕꽃의 표현이 그리 호락호락 쉽지 않음도 고백한다.

막상 공개하려니 조금은 부끄럽다 더 아름답게 멋지게 표현 할 수 있었는 데 하는 아쉬움을

매번 느끼는 감정이지만 더 사랑스런 야생화와 깊이 있는 대화의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

 

더덕꽃이 하늘을 배경삼아 겸손하게 피어난 모습을 바라보면

보은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종의 형태로 생각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어

그 향기로운 전설을 한번 엮어보기로 하였다.

 

 

 

 

 

보은(報恩)의 종 치악산 남대봉 상원사(上院寺) 

 

     경상도 의성에  한 나그네가 과거길에 올라  한양을 향해 발길을 옮겨놓았다.

치악산 기슭 오솔길을 지나가던 중 깊은 숲 속에서 암꿩의 긴박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새끼들의 먹이를 구하려고 숲속으로 날아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었다.

 

당황하고 놀라워서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보니  잔솔밭 아래

커다란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고 큰 턱뼈를 마음껏 벌리고  있었다.

 

나그네는 구렁이에게 잡아 먹히려는 꿩의 울음소리가 너무  불쌍하게 들리어 

호신용으로 지니고 간  활을 조준하여  구렁이의 눈을 맞추어  죽였을때

울음을 멈춘 암꿩이 고맙다는 인사로  잠깐  맴돌고서 홀연히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던 길을 재촉하여 갔지만  해가 저물기 시작하였고

너무 깊은 산중에서 땅거미가 깔려오기에 서둘러 묵고 갈 집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가도 가도 인가는 나타나지 않아 땀범벅인 된 모습으로 헤메고 있을 무렵

멀리 아스라하게 비쳐지는  반가운 불빛을 따라 달려가 찾아낸 집은 어느 이름 모를 절간이었다.

 

문을 들어서면서 주인을 찾으니 이상하게도 소복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나그네는 헐떡이는 숨을 몰라치면서  긴 밤을 지낼수 있도록 간청하니

여인은 미소를 안고 쾌히 승낙하고 묵고 갈 사랑채로 안내했다.

 

여인은 친절하게 절색 가인답게 저녁밥을 차려다 주고 대접을 융숭히 해줬다.

저녁밥을 먹은 나그네는 낮동안 헤메고 일어난 일들로 피곤에 지쳐 곧장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순간적으로

잠에서 깨어나 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온몸을  감고 있었다.

 

나그네는 놀라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손님으로 온 사람을 대접하면서

해치려고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구렁이는 간사하게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오늘 낮에 오시다가 산속에서 살생을 했소, 구렁이가 내 남편이오,

그를 죽였으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힘주어 몸을 휘감기 시작하였다.

나그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자업자득이로다  하면서 목숨을 포기하고 있을 때

 

구렁이가  절 뒤편에 있는 종루에 종이 있는데 그것을 세 번을

울리게 하면  살려줄 수가 있소? 하고 조건을 내놓았다.

나그네는 자신의 활 늘력을  믿고  종을 울리는 것에 자신감을 갖고

 

3번의 종소리는 내어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소망을 갖고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자 나그네는 절 뒤뜰에 나가보았다.

 

 

 

 

 

그랬더니 구렁이의 조건대로 종루가 있고 그 끝에는 종이 달려있었다.

그러나 그 종루는 어찌나 높은지 다른 종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지만.

나그네는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고 힘껏 당겼다.

 

그러나 첫 화살은 종에 미치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둘째 화살도 첫 화살처럼 종을 미칠 듯 미칠 듯 하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그네는 마지막 화살을 뽑아 있는 힘을 다하여 다시 종을 향해 쏘았다.

마지막 화살도 종에 미치지 못하고 힘없이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그네는 이젠  어쩔수 없이 구렁이의 밥이 되어야 겠구나 하면서

힘없는 발걸음을 떼어 놓으려는 순간 이었다


「뗑! 뗑! 뗑!」하고 종루에서는 희미하게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종이 울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구렁이의 변신인 소복한 여인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눈이 부시도록 청명한 햇살이 비쳐지면서  나그네는 죽음의 위기를 면하게 됐다.


나그네는 종소리가 난 것이 하도 이상해서 종루 밑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그곳에는 꿩 세 마리가 머리에 피 범벅이 되어 죽어있었다.

숲속에서 구렁이로 부터 암꿩의 구하여준 새끼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몸을 희생하면서  머리로 종을 치고 죽은 것이었다.

 

이 사실을 전하여 들은 마을 사람들은 꿩들이 보은(報恩) 한 산이라 하여

꿩 치(雉)자를 사용하여 雉岳山(치악산)이라고 불러지고 전한다.

 

구렁이와 암꿩의 보은 전설로 유명한 상원사(上院寺)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에 위치된

 치악산 남대봉 바로 아래 해발 1,002m의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며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지었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王師)였던 무착선사(無着禪師)가 건립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말 나옹스님에 의하여 새롭게 지어 졌으나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으나

1968년 다시 지어진 후 1988년 현재의 위치에 이전되어 중창하였다.

높은 곳에 조성된 사찰답게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 되었다.

 

더덕꽃을 바라보라 암꿩들이 보은의 사랑으로 울려준  치악산 상원사의 종과 닮지 않았는지

말못하는 짐승들도 자신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을 교훈삼아

우리들도 감사한 사랑을 잊지 않는 향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인삼을 대신할 만큼 약효 좋은 보혈제
더덕[양유(羊乳),사삼(沙蔘)]
Codonopsis lanceolata(S.etz.)TRAUTV.

 

 

더덕은 연한 녹색 꽃잎의 안쪽에 자갈색 반점이 아롱거리는  방울처럼 생긴

 예쁜 꽃이 짧은 가지 끝에서 밑을 보며 수줍은 듯 달린다.

 

사람으로 치면 신경이 예민한 사람처럼, 누가 스치고 지나치기만 해도 향기를 뿜어댄다.  

이는 음지식물의 본능으로 곤충을 유인하려는 것이지만  때로는 향기 때문에 산에 오른 사람 등에게 쉽게 발견되어

 저녁 밥상에 영양식으로 오르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며  산의 7부능선 위에서 주로 많이 자생하는 편이다.

 

다른이름으로 행엽. 행엽채. 행엽채근 등 우리나라 각지의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도라지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식물이다.

 

뿌리가 도라지 모양이지만 훨씬 굵으며 덩굴의 길이는 2m안팎이다.

줄기를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오며, 줄기 끝에서 잎이 4개가 서로 접근하여 얼핏보면 돌려난 것같이 보인다.

 

7~8월에  종처럼 생긴 모양의 꽃이 피고  끝이 5개로 갈라져 약간 뒤로 말아지며

 말아진 부분이 자주색이고 원통 부분은 녹색이다.

 

그래서 방울이라는 뜻의 '영'과 아가풀이라는 이름의 '아초'를 붙여 '영아초'라고 부른다.  

온통 향긋한 방향성 식물인 더덕의 줄기를 자르면 하얀 젖같은 즙이 나온다.  

그래서 '양의 젖 같은 풀(양유)'로 불린다.

 

원래 도라지과의 식물들은 꽃이 피면 암술이 길게 밖을 향하고 수술은 안쪽에 붙어 보이지도 않을 정도이다.  

특히 도라지과의 식물들은 사람으로 치면 근친 결혼을 거부한는 식물 중의 하나이다.

 

이 때문에 도라지꽃·더덕꽃·만삼꽃 등이 피면 먼저 통속  맨끝 안쪽에 붙어 있는 작

은 5개의 수술이 피어나지만,  이때 암술은 입을 꼭 다물고 수술이 시들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며칠 후 수술이 시들어 구부러지면 그때서야 암술이 3개로 크게 갈라지며 수꽃의 꽃가루를 기다린다.  

더덕은 꽃 안쪽에 많은 꿀을 숨겨두고 벌이 이 꽃에 들락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옛책 만선식물자휘에

 

조선에서는 행엽·사삼·참더덕나물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행엽·사상·행엽채근이라 부르고

조선과 만주 도처의 산야에 편생한다고 하였다.

달리 도도끼인삼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에서 부르는 이름인 더덕이 전해지면서 와전된 것 같다고 하였다. 

 

 어린 잎과 뿌리를 사용하며, 먹는 방법은 간략하게 도라지와 같다고 하였다.


약재로서는 해수·폐루· 등의 증세에 뿌리를 달여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고 하였고 인삼 대용으로도 이용한다고 하였다.

더덕은 위장과 폐의 기운을 채우고 고름이나 종기를 없애고 음력8월이나 음력 2월쯤에 캔 뿌리를 햇볕에 말려서 약용한다

 

가을에 캔 것은 희고 건실하며 봄에 캔 것은 미황색이며 공허하다

맛은 달면서 약간 쓰고 성질은약간 차고  사포닌*칼슘*인*철분 등이 들어있다.

 

 

즐겁고 기쁨만 가득한 시간으로 승리하시길 기도드리면서

 

사랑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세요!!

 

 

 

 

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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