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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보호 대상 야생화에 숨은 이야기를 탐구하는 사진 작가 (정필원)

기타(인물사진 포함)

1969년 어묵 한 조각에 눈물 고인 추억이야기!

테리우스원 2011. 12. 13. 06:00

 

1969년 추억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서 교실 안은 시끌벅적 하고 배를 잡고

호탕한 웃음소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심히 궁금하여 둘러싸고 있는 친구들 어깨를 짚고

벌어진 그 곳을 볼 수 있었다.

 

시절은 초등학교 6학년 1반 교실에서

초겨울에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다.

60년대만 하드라도 가난의 연속으로

보릿고개를 체험한 세대들이다.

 

 

 

 

교실안의 환경도 연약하여 겨울철에는 변변한

난방 시설도 되지 않고 자연의 햇빛이 최고이었고

그나마 갈탄의 따뜻함으로

수업을 진행한 시절이다.

 

교실 반 그날의 당번이

 다른 학생들 보다 일찍 등교하여

들통에 갈탄 창고로 배급을 받으려 가면

갈탄을 피울 수 있는

불쏘시개와 갈탄을 가득 담은 들통으로

하루의 일과는 시작된다.

 

 

 

 

누구보다 창가에 자리를 배정받은 학생들은

행운아로 그늘진 학생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물론 갈탄으로 66평방미터의 내부를

따뜻하게 만족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연스런 햇볕으로 따스함을

누리는 행운이 된 것이다.

 

 

 

 

지금은 무상급식이다 그리고 따뜻한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는 점심시간이면 빈부의 차이를

느끼는 시간이 되 버린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학생들 알루미늄

도시락에 보리가 가득 섞인 밥을 더 많은 량을 위하여

눌러 담아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면 달 다져진

떡밥이라고 표현함이 더 나을 듯하다.

 

 

 

 

도시락의 한쪽 작은 반찬그릇에는

가정에 냉장고가 없던 시절 염장 식품들과

겨울철에는 김치가 주를 이루었다.

 

계절별로 제공되는 채소류를 반찬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최상의 도시락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무를 가늘게 채를 쓴 것에 고춧가루와

식초에 무쳐 종종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해 주셨다.

 

그런데 무가 시간이 지나면서 머금고 있던

수분이 나오면서 반찬 국물이 많아 아무리

정교하게 도시락을 들고 걸어

온다고 하여도 기울기에 따라

국물이 도시락 밥 일부를 덮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었다.

 

 

 

 

그래도 많은 량의 밥을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시절에는 점심시간 따뜻하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은 그림에 떡인 셈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상류층의 친구들은

따뜻한 도시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반에는 딱 1명이 상류층에 속한

학생이 있었는데 집에 가정부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우면 갓 지은

하얀 쌀밥을 도시락 뚜껑이

닿지 않도록 정성 스레 담고 반찬그릇은 별도로

요리되어 맛깔스럽게 담긴 도시락이

학교 운동장에서 기다리다 점심 종이 울리면

교실로 공수되었다.

 

우리 모두는 그 도시락이 최상의 부러움이었다.

창밖에는 찬 겨울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시간 다 식어진 떡밥의 도시락보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에

따뜻하게 갓 만들은

반찬으로 담김 도시락 모습을

상상하면 어떨까?

 

 

 

 

 

본인은 매일 이렇게 먹는 것이 생활화 되어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우리들은 그런 생활들이

땐 최상의 부러움이 되고 있었다.

 

그때 시장에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의

가난을 체험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 집의 사정이나 그 친구의 가정은 누가

낫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항이었지

서로 공납금을 제 날짜에 납부하지 않아 둘이는

집으로 쫓겨 간 기억이 여러 번 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가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특별한 메뉴 가 존재하지 않는 가정의

도시락 반찬은 김치가 매일 담긴 상태라

그날은 친구의 도시락을 반찬 뚜껑을 열어보는 순간

눈이 꽂힌 것 같아 반찬을 하나 달라고

조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친구의 청을 쉽게 들어주지

않고 있어 주변 친구들의 구경꺼리가

된 것이었다.

 

반찬을 보아하니 그때 시절에는

달걀 후라이와 어묵 볶음이 최상의 메뉴였다.

생선을 갈아 만든 어묵(당시 오뎅이라고 하였음)

불러 따뜻한 불에 갓 볶은 것은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가정에는 엄감 생신 쉽게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아니다.

 

가난한 친구가 따뜻한 오뎅이

하나 먹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젓가락을 손에 들고 친구에게 간청하고 있는

모습으로 하나만 딱 먹으면 안 될까?

하는 소리에 장난기가 발동하여

‘안되는데 그러면 꿀밤을 한 대 맞고 먹어라!’

로 협상 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 협상을 주의깊게 지켜보는 눈치다.

망설이다 말고 ‘그래! 막고 한 개 먹고 싶다고‘

하자 주먹을 쥐고 친구의 머리를 사정없이

퍽! 소리를 내면서 내리쳤다.

 

그 순간 교실은 완전 뒤집어 져 버렸다.

거센 알밤의 위력에 왼손은 머리를 만지면서

오른손 젓가락으로 어묵 하나 집어 들고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두는 박수를 치며 웃고

난리가 난 것이다.

 

친구는 입안에 어묵을 씹으면서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자존심보다 아픈 머리의 통증으로 말이야

얼마나 먹고 싶은 음식이기에 머리에 알밤을

세차게 맞으면서 먹고 싶어 하였을까?

 

 

 

 

 

난 먹고 싶어도 자존심이 상하여

그렇게 까지는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땐 한번

먹어 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이기도 하였다.

 

요즈음은 어묵 복음은 맛난 반찬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이색적인 반찬이라도

반 학생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한 다는 것이다.

그 만큼 우리들의 생활이 풍요로워졌다고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다.

 

 

 

 

특수하고 특별한 요리가 아니면

세상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누리기는 힘든 사항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음식점이 사람의 왕래가

많은 목 좋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지만

 어느 날 외진 곳에서도 맛나고

특별한 음식으로 소문만 나면

거리와는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더 나아가서 우리들의 입맛과

친절함의 만족도와 건강 자연식으로

충족시키는 곳이면 더 인기를

누리지 않을까 사료된다.

 

문덕 어묵으로 만든 음식을

먹으려니 그때 그시절

아련한 추억이 머리를 스쳐 지난간다.

 

 

 

 

 

날씨가 점점 차가워지는 겨울이 다가옵니다.

어깨를 활짝 펴서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시길

 

사랑합니다! 그리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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