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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을 도자기에 승화시킨 장애 어머니 인간 승리!!

테리우스원 2012. 7. 16. 12:41

 

 

 

 

여자는 연약하다고 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내 곁에서 일어난 사항에 대견스러움과

감사함으로 힘찬 기립박수를 먼저 보내드리고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힘든 고통의 삶을 이기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택하고 있을까?

궁금함을 많이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28세 지적장애 1급아들을 눈물로 키우며 다가오는 삶의 고통을

흙속에 불태워 담은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물 담은 하늘’이란 주제로

7월2일부터 8월3일까지 대전광역시교육청 1층 대전미술관에서 박정희 도예전을 가진다.

 

 

 

 

 

 

 

잠시 가슴을 아프게 만든 본인의 고통스런 고백을 들어 본다

 

안녕하세요? 대전에 있는 대덕중학교 교감이며,

 28세 된 지적장애 1급 장애우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현재 전국에서 장애아이 때문에 힘들어 하는 어머니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아이는 1984년 12월 시골의 한 병원에서 태어났는데,

위로 누나가 있고 둘째 아이로, 당시 제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아이를 낳는 순간 정신을 잃고 난산이 되었습니다.

 

잠시 후에 정신이 들었지만 아이가 울지 않는다며 주변이 어수선했습니다.

후에 겨우 살아나긴 했으나 신생아 때부터 이상한 증세를 많이 보였습니다.

깊은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젖을 제대로 삼키지를 못하고,

목을 가누고 뒤집고 서는 것도 다 느렸습니다.

 

 

 

 

 

세 살 쯤 될 때 재활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의사선생님은 제 아이가 뇌성마비 장애로 현재 의술로는 고칠 수가 없고

앞으로 특수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는 저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아이를 위해서

무얼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지적 장애가 너무 심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읽는 교육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육체적 활동을 통해서 뇌 발달을 유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여

유원지, 놀이공원, 박물관에 수영장 또는 가까운 산과 같은 자연에도 많이 다녔습니다.

 

 

 

 

 

 

성장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보통 아이들이 발달하는 것과는 점점 더 큰 차이가 났습니다.

아이의 몸은 점점 자라는데 여전히 말을 못하고,

걷는 것도 뒤뚱거려 자주 넘어져서 다치곤 했는데,

아이가 넘어져 다치게 되면 속상한 마음에

‘똑바로 잘 걷지 왜 넘어지냐’고 나무라기도 하고 침을 많이 흘리면

“침 흘리지 말라”고 다그치곤 했지만 그런 것은 아이 발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아이를 위해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였는데,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만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더라도,

 과연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수가 있으며,

 

또 제가 아이에게 전적으로 매달린다 하더라도  아이가 가진 장애가

좋아 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니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아이는 커 가는데 그 때까지 내 집 마련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장래 아이와의 생활을 위해서도 제가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쯤 되었을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삼 년 만에 돌아온 아이 아빠는 아이의 장애를 이해하기 못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낮에는 학교에 나가 근무하고 밤에는 아이와 시달리다 보니

아이 아빠에게 좋은 아내 역할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 아빠는 이런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남은 인생 이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 헤어져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아이가 7살이었는데,

이런 아이를 두고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을 보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위자료나 양육비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아이들 친권을

제가 가지는 조건으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매일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여

7시 30분에 아이와 함께 집을 나와서,

아이는 스쿨버스에 태워주고 저는 저대로 출근하고,

저녁에는 학교가 끝난 후 어머니 집으로 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제 일상이었으며,

직장과 아이 양육 두 가지를 겸하려면 수퍼우먼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다행이 친정어머니께서 아이를 극진히 돌보아 주셨는데,

저 대신 장애인복지관에 데리고 다니시면서 교육을 받게 해 주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학교행사도 참여해주시며 엄마의 역할을 거의 다 해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이를 돌보아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두 가지 일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밤에 잠을 안자고 설치는 아이와 아파트에서 사는 것 보다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유성의 변두리에 낡은 집을 사서 이사를 했습니다.

 

 

 

 

단독주택에서 사는 일은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시 도심과 떨어져 있어 은행, 마트 등 편의 시설이 멀고,

낡은 집이라 여기저기 수리할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 밤중에 아이가 깨어 돌아다녀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좋았고,

 아이가 남들 눈치 안보고 맘껏 놀 수 있는 잔디밭에 있고, 그

네도 있고, 개와 고양이를 키워 정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한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특수교육에 대한 공부를 하고,

특수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일반 중학교에서 근무하다가

특수학교로 옮겨 장애 아이들을 10년 동안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지인들은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것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하고.

시설에 데려다 주고 편히 살라고 하지만,

안마해 준다고 내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어 달라고 하면 번쩍 들어 주기도 하고,

정서적으로도 많이 안정되고 성격도 밝아 사람들에게 인사도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게 아이를 키웠지만 데리고 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날에는 친했던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몇 십 년 동안 만나지 않았으며,

누가 결혼한다 해도 예식장에는 가지 않고 축의금만 보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제가 우울증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하며 제 자신이

땅 속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허전한 마음도 들기도 하고,

저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십 여 년 전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도자기 만드는 작업이 제 적성과 취미에 너무 잘 맞는 것 같아 열심히 하게 되었고 도

자기를 만드는데 몰두하는 동안 아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노래 부를 만큼

바쁘게 살아오면서 늘 마음속에서 바랐던 것은

쉼, 여유, 위안 안식, 휴식, 평안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흙을 만지며 보낸 시간은 바쁜 속세에서 벗어나

마치 시간의 흐름이 없는 흙을 만지고 있는 동안 현실의 세계에서 벗어나

무념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흙이 가지는

자연스런 성질을 그대로 살려서 만드는 것을 좋아했으며,

맨손으로 주무르고 두드리고 빚는 가운데 생긴 자연스런 손자국은

신선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도자기를 만들어 대전 교원미전에서 1등급 상을 받았고,

상공회의소에서 주는 도자기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또한 특수학교에 근무할 때는 장애 아이들에게 도자기를 만들기를

가르쳐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작업 기능이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정신지체 학생의 직업기능 신장을 위한 생활도자기 만들기 지도자료”를

개발하여 전국 교육자료전에서 1등급(푸른기장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2012년 4월 30일부터 5월 25일까지

중등학교 교장자격연수를 받았으며,

2012년 7월에는 그동안 만들어왔던 도자기 개인전을

대전광역시교육청 제1전시실에서 가지게 되었답니다.

 

장애아이를 키우면서 힘들거나 절망감이 들 때도 많았지만 극

복하고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강해야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결과라고 생각하며,

 

성경(시편 126편 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곡식의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는 말씀과도 같이 눈물로 살아온 삶 뒤에 참된 기쁨의

열매를 얻게 되리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상  본인의 아픈 상처를 토해내는 말씀에는 나의 가슴을 두들겨 패 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하는 시간이었다.

 

웅진요 양미숙 선생님의 평론에서는 가공되지 않고

빗어내는 그릇들은 흙의 맛이 살아있다는 표현을 하신다.

자연의 가공을 배제하고 손과 마음으로 빗어내는

작품이라 가능하다는 표현도 인상적이다.

 

 

 

 

혼자만 감상하고 마음으로 담아 두기엔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하여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싶은 솔직함이다.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 사항에 부딪히면 포기하려하지만

이와 같은 어려운 사항에도 승리의 미소를 머금은

삶에 희망을 잃지 않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작가의 노트를 잠깐 훔쳐보니

맨손으로 주무르고 두드리고 빚는 가운데 생긴 자연스런

손자국은 신선한 에너지를 준다.

힘든 삶에 마음을 비우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빈 마음속에 환한 둥근달이 허전한 마음을 꽉 채워주었다고 한다.

 

 

이런 작품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 것 같아

빚어낸 모습을 감상하는 기회를 드리고 싶다.

 

 

 

 

 

모두 즐거운 하루 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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